젠슨 황 양자 컴퓨터 발언과 재산·부인까지 엔비디아 CEO의 모든 것

젠슨 황 양자 컴퓨터 발언과 재산·부인까지 엔비디아 CEO의 모든 것

젠슨 황(Jensen Huang)은 실리콘밸리에서 가장 독특한 존재로 여겨집니다.

검은 가죽 재킷 하나로 상징되는 그는, 한때 영어 한마디 제대로 하지 못한 대만 출신 이민자 소년이었는데요.

어린 시절 태국과 미국을 오가며 성장한 그는 전기공학자가 된 후 1993년 동료들과 산호세 ‘덴니즈’에서 엔비디아를 창업했습니다.

당시만 해도 회사는 무명에 가까웠고, 그래픽 칩 시장은 치열했으며, 파산 위기도 여러 번 겪었는데요.

하지만 그는 지포스 시리즈로 그래픽 산업을 혁신했고, GPU가 AI 핵심 기술이 되며 엔비디아(NVIDIA)는 글로벌 기업으로 도약하게 됩니다.

目次

젠슨 황의 어린 시절과 성장 배경

(출처 : 매경 자이앤트)

1963년 2월 17일, 중국 저장성 출신 부모에게서 태어난 젠슨 황은 대만계 미국인이자 중국계 미국인입니다.

2남 중 차남인 그는 타이베이에서 태어난 뒤 곧 타이난으로 옮겨 다섯 살까지 그곳에서 유년기를 보냈는데요.

이후 아버지의 태국 정유소 발령으로 가족은 다시 태국으로 이주했고, 그는 아홉 살까지 그곳에서 성장합니다.

(출처 : 모바일한경)

그러나 1973년 태국 정세가 불안해지자 가족은 미국 이민을 결심했고, 젠슨 황은 먼저 워싱턴주의 숙부에게 보내졌는데요. 이후 그는 켄터키의 개신교 사립학교인 오네이다 초등학교에서 미국 생활을 시작했습니다.

이후 그는 오리건에서 고교를 마친 뒤 오리건 주립대에서 전기공학 학사를, 스탠퍼드에서 전기공학 석사를 취득하는데요.

졸업 후 AMD 등에서 마이크로프로세서 설계 경험을 쌓은 그는 1993년 동료들과 엔비디아를 공동 창업하며 본격적인 도약을 시작합니다.

엔비디아 설립과 그래픽 카드 시대의 도래

(출처 : 투자도 인생도 복리처럼)

젠슨 황은 친구 크리스 말라코브스키, 커티스 프리엠과 함께 단 4만 달러를 들고 엔비디아를 창업했습니다.

장소는 캘리포니아 산호세 근처의 덴니즈 식당 테이블이었다는 일화가 전해지는데, 그만큼 초기의 시작은 소박했죠.

(출처 : 모바일한경)

이들은 3D 그래픽 처리와 게임용 그래픽 칩을 목표로 출발했지만, 시장 경쟁은 치열했고 회사는 몇 차례 파산 위기까지 몰리기도 했는데요.

(출처 : 모바일한경)

그럼에도 엔비디아는 1999년 IPO를 통해 자본시장에 데뷔했고, 같은 해 등장한 ‘지포스 256’은 게임 그래픽 시장을 뒤흔들며 GPU 시대를 열었습니다.

참고로 이 제품은 세월이 흐른 지금, AI 연산을 가능하게 한 GPU 혁명의 출발점으로 평가받고 있는데요.

결국 덴니즈 식당 구석에서 출발한 작은 스타트업은, 흐름을 읽고 밀어붙인 집념 하나로 세계 산업의 판도를 바꾸는 기업으로 도약했습니다.

GPU 혁명을 주도하다

(출처 : 경향신문)

이후 젠슨 황은 GPU 성능이 무어의 법칙을 뛰어넘는다는 평가와 함께, GPU를 게임용 부품에서 AI·고성능 컴퓨팅의 핵심 기술로 끌어올렸는데요.

그는 GPU의 강점을 활용해 엔비디아를 일반 그래픽 카드 회사에서 AI·데이터센터 등을 아우르는 종합 컴퓨팅 기업으로 성장시켰죠.

실제로 엔비디아는 현재 일반 GPU 업체가 아니라, 소프트웨어 생태계 CUDA로 대표되는 플랫폼 기업으로 자리 잡았는데요.

(출처 : 뉴스1)

이렇듯 젠슨 황의 혁신 덕분에, 엔비디아는 일반 그래픽 카드를 넘어 AI·데이터센터·자율주행 등 첨단 분야까지 빠르게 영향력을 넓혀 나갔습니다.

그 결과 엔비디아는 미래 산업의 흐름을 좌우하는 핵심 기업으로 성장했고, 기업가치 역시 압도적으로 성장할 수 있었습니다.

젠슨 황 양자 컴퓨터 발언

(출처 : 서울경제TV)

이런 젠슨 황은 최근 양자컴퓨팅에 대한 발언으로 업계의 이목을 집중시키기도 했는데요.

특히 2025년 1월에는 라스베이거스 한 행사에서 “유용한 양자컴퓨터는 아직 20년은 더 필요하다”며 기술적 한계를 지적했죠.

이 발언은 관련 기업들의 주가를 하루 만에 30~40% 급락시킬 만큼 강한 파장을 일으켰는데요.

(출처 : 경향신문)

하지만 몇 달 뒤인 2025년 6월에는 “양자 컴퓨팅이 전환점에 왔다”며 조기 실용화를 기대하는 더욱 긍정적인 전망을 내놓기도 했습니다.

이후 2025년 10월에는 GPU 슈퍼컴퓨터와 양자컴퓨터를 직접 연결하는 기술인 ‘NVQLink’를 공개하며 큰 한 번 더 큰 파장을 일으켰는데요.

특히 그는 ‘NVQLink’가 양자 오류 보정에 핵심이라며, 양자컴퓨터는 당분간 엔비디아 GPU의 보조 역할에 머물 것이라고 밝히기도 했습니다.

젠슨 황 재산 현황

(출처 : 뉴스1)

블룸버그 집계에 의하면, 2025년 7월 기준 젠슨 황의 재산은 약 1,400억 달러(한화 약 206조원)로 세계 10위 수준입니다.

젠슨 황의 막대한 재산은 대부분 그가 보유한 엔비디아 지분에서 비롯되는데요.

하지만 그는 이 엄청난 부를 단순한 사치로 소비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가족의 미래와 교육, 그리고 사회를 위한 장기적 투자로 돌려놓으며, 부의 가치를 ‘나누는 힘’으로 확장해 왔는데요.

(출처 : The JoongAng)

특히 그는 2007년 부인 로리 황과 함께 ‘제인-션 앤드 로리 황 재단’을 설립하며, 첫 기부로 엔비디아 주식 3억 달러를 내놓기도 했습니다.

이후에도 재단은 지속적 기부와 장기 프로젝트로 규모를 키우며, 고등교육과 지역사회 발전에 실질적 변화를 만들어가고 있는데요.

이렇듯 단발적인 선행이 아닌, 꾸준하고 구조적인 지원을 이어가는 점에서 우리는 그의 철학을 알 수 있습니다.

젠슨 황 부인 로리 황은 누구인가

(출처 : 다음 캐스트픽)

젠슨 황의 아내로 잘 알려진 ‘로리 황(Lori Huang)’은 단순한 조력자가 아니라, 젠슨 황의 대학 시절부터 함께 연구하던 실험실 파트너였습니다.

두 사람은 졸업 후 결혼했고, 슬하에 두 자녀를 두었죠.

흥미로운 점은 두 자녀 모두 엔비디아에서 커리어를 쌓고 있다는 것인데요.

(출처 : 동아일보)

특히 아들 스펜서 황은 엔비디아에서 제품 매니저로 활동하며 실제 제품 개발 라인에 참여하고 있죠.

아울러 딸 매디슨 황 역시 마케팅 부문에서 주요 역할을 맡으며 회사의 대외 커뮤니케이션 전략에 힘을 보태고 있는데요.

이렇듯 로리 황과 두 자녀까지 이어지는 가족의 참여는 엔비디아가 일반 기업을 넘어 ‘황 가족의 철학이 스며든 기술 공동체’라는 걸 느끼게 합니다.

또한 젠슨 황의 리더십 뒤에는 가족의 신뢰와 헌신이 자리하고 있었음을, 이것이 오늘날의 엔비디아를 만든 기반이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마치며

(출처 : TheMiilk)

젠슨 황의 삶과 엔비디아의 성장 서사는 단순 성공담이 아닙니다.

이민자 소년의 도전과 기술을 향한 집념, 그리고 가족의 신뢰가 일궈낸 엄청난 여정이라고 표현하는 것이 더 어울릴 것입니다. 

그의 길을 따라가다 보면, 결국 변화와 성장은 특별한 재능보다 끊임없이 배우고, 버티고, 추진하는 힘에서 비롯된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는데요.

엔비디아의 미래가 아직 끝나지 않았듯, 우리 각자의 가능성 역시 지금 이 순간에도 확장되고 있습니다.

기술을 바라보는 시선이든, 자신의 커리어와 삶을 개척하는 방식이든, 젠슨 황의 이야기는 질문을 던집니다.

“당신은 지금 어떤 가능성을 준비하고 있는가?”

저자

최도윤のアバター 최도윤 5년차 비즈니스 전문가

안녕하세요, 산업 변화와 비즈니스 전략을 중심으로 기업과 시장의 흐름을 분석해 온 최도윤입니다.
고객 경험, 자산가 행보, 마케팅 트렌드를 연결해 실제 비즈니스 의사결정에 도움이 될 수 있는 인사이트를 정리해 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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